패션/나만의 패션 이야기

일본의 스트릿 패션에 대하여./ 후지와라 히로시/ 하라주쿠와 우라하라.

제리슬리먼 2023. 5. 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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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는 패션의 성지다. 이것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다.

일본의 패션을 처음 해외로 널리 알린 선두주자로는,

"레이 카와쿠보(브랜드 꼼데가르송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브랜드 요지야마모토 디자이너)" 정도가 떠오른다.

왼쪽 사진이 요지 야마모토 / 오른쪽 사진이 레이 카와쿠보 (사진출처 : 온큐레이션 / 하찬호)

이들은 일본의 패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특히 "레이 카와쿠보"는 옷을 디자인하는 능력도 뛰어나지만, 현재 일본의 패션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수많은 현역 디자이너를 양성 해낸 사람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들은 패션 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이라는 나라 안에서도 특히 존경받는 거장들이다.

이들의 컬렉션을 보면 어딘가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의 우아함을 닮아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가 일본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일본의 패션은 다소 거칠고, 투박하고, 약간은 불량한 “스트릿한” 감성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번에 다뤄볼 주제는 일본 스트릿 패션의 전성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하라주쿠, 우라하라 부흥기에 옷을 입문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 한~참 뒤에 입문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일화를 듣고 일본 패션에 감성을 느끼는 것에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꼭 한번 다뤄보고 싶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 같은 이야기니까 잘 걸러 듣기를 바란다.

내가 들은 이야기도 당연히 왜곡되고, 부풀려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라주쿠 다케시타도리 (사진출처 : TABIDO )

일본에는 “하라주쿠” 라는 패션 도시가 있다.

알아듣기 쉽게 우리나라로 치면 ‘압구정’이나 ‘가로수길’ 정도가 되겠다.

그 하라주쿠에서도 옷 가게가 밀집된 지대인 “다케시타도리”의 뒷골목을 “우라하라주쿠”, “우라하라” 라고 부른다. 지금의 하라주쿠와 우라하라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우선 그 중심에 있는 “후지와라 히로시”라는 인물을 알아야 한다.

최근 나이키와 콜라보를 해서 말도 안 되는 리셀가를 형성했던 그 프라그먼트의 대표가 바로 “후지와라 히로시”다.

 
 
 
 

왼쪽은 나이키x프라그먼트x트레비스스캇/ 가운데 후지와라 히로시 / 오른쪽은 프라그먼트 로고

그는 학창 시절부터 옷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도쿄의 한 패션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해서 런던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런던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런던에서 만난 친구의 조언으로 뉴욕까지 찍게 되었다. 그곳에서 힙합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서도 사람들에게 힙합의 매력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고, 스트릿 의류에도 관심이 생겨나, 하라주쿠의 작은 뒷골목으로 향했다.

“후지와라 히로시”는 그곳에 “굿이너프” 라는 브랜드를 차렸다.

왜 하라주쿠의 뒷골목을 선택했냐면..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당시 일본의 힙합 전도사였던 후지와라 히로시를 따르던 사람들은 우라하라의 굿이너프에 몰려들었고, 성공적인 사업을 이뤄냈다.

그다음에 후지와라 히로시는 친구들의 사업을 돕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장이 노웨어(NOWHERE) 라는 편집샵인데, 이 편집샵의 사장들이 언더커버로 잘 알려진 “준 타카하시”와 과거 베이프를 설립하고, 현재는 휴먼 메이드를 이끌고 있는 “니고” 이다.

 
 

왼쪽은 준타카하시, 오른쪽은 니고.

이렇게 “후지와라 히로시”라는 한 사람을 시작으로 하라주쿠의 뒷골목에는 다양한 스트릿 브랜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이버후드, 더블탭스, 마스터피스, 바운티헌터, 헥틱, 텐더로인, 넘버나인(현 솔로이스트) 등 ” 이다.

참고로 당시 일본에서 최고 잘나가는 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텐더로인을 입고 방송에 나왔고, 이후에는 “쿠보즈카 요스케”가 마스터피스, 더블탭스를 입고 다녔다.

 
 

기무라 타쿠야와 쿠보즈카 요스케.

이 외에도 “후지와라 히로시”가 손을 댔던 업적을 살펴보면 진짜 괴물이 따로 없다..

몇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와코마리아"의 첫 컬렉션에 도움을 줬고, "카브엠트"의 창립을 도왔고, "비즈빔"의 대표작 중 하나인 FBT슈즈의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진짜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이렇게 그는 후진 양성에 진심이었다.

당연히! 이 수많은 브랜드가 성공할 수 있던 이유는 개개인이 가진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히로시가 그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것이 가벼운 첨언 정도의 개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지와라 히로시가 손을 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초창기에는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브랜드들은 기본적으로 멋있는 옷을 만들어낸 것이 인기의 비결이지만, 또 다른 매력은 이들은 하나같이 개방되지 않은 폐쇄적인 영업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했다. 심지어 어떤 가게는 지도상에 표기가 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또 손님을 우선시하는 것보다 브랜드의 독보적인 이미지를 지켜내는 것에 집중했었다.

당연히 소비자들에게는 이런 매력들이 미치는 포인트로 다가왔을 것이다.

기존과 다른 매장의 운영 방식에 호기심을 느끼고 광적으로 몰려들 수밖에.

이처럼 한때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스트릿 브랜드들은 거대한 자본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옷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여 "좁은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것이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많은 스트릿 브랜드들도 저들을 선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그렇게 하라주쿠와 그곳의 뒷골목인 우라하라가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명품 브랜드 매장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명품 시장이 다시 강세를 잡게 되면서, 일본의 스트릿 브랜드가 주춤하기도 했다. 실제로 버티지 못하고 도산한 브랜드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쇠퇴의 길을 걷던 90년대 일본 스트릿 브랜드가 최근에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이했다.

조금은 변형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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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일본 브랜드를 알기 전까지는 프랑스의 명품 하우스가 전부인 줄 알았고,

그들의 럭셔리한 무드에 감동을 느꼈었다.

우라하라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일본 패션 하우스의 다소 걸치고 투박한, 날 것에서 감동을 느꼈다.

둘 다 정말 좋아하는 장르이지만, 굳이 나한테 한 쪽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일본의 감성이 조금 더 내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야기가 더 와닿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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